| 분당에 나타난다, 꽃을 든 게릴라
[중앙일보]입력 2014년 11월 07일
지난달 30일 분당 야탑역 인근 상인들과 자원봉사에 나선 시민 정원사들이 역 부근 화단을 재단장하고 있다. 행인들이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못하도록 빈 공간에 꽃과 풀을 촘촘히 심었다. [사진 성남시]6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미금역 사거리 부근의 상가 밀집 지역. 보행로 사이에 조성된 기다란 화단에 수십년 묵은 느티나무 8그루와 황금빛 억새, 보라빛 꽃양배추 등이 한 데 어울려 있다. 얕게 깔린 짙은 녹색 풀 위로는 붉은 낙엽이 수북히 쌓였다. 도심 한복판에 늦가을의 정취가 물씬 묻어났다.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니다. 불과 열흘 전만 해도 오래 전에 풀이 말라 벌건 흙이 드러나 있었다. 행인들은 버려진 화단에 아무런 거리낌 없이 담배꽁초 등을 버렸다. 주민 권정미(50·여)씨는 “ 시도때도 없이 쓰레기가 쌓여 주민과 상인들 모두 안타까워했다”고 말했다. 이를 분당구 금곡동 주민들과 시민 정원사들이 살려냈다. 청솔마을 아파트 주민 30여 명은 삽과 호미를 들고 돌처럼 굳은 화단 땅을 갈아엎었다. 그리고 경기도 시민 정원사 10명이 설계한 ‘한 뼘 정원’을 만들기 시작했다. 높낮이를 달리 자른 통나무로 화분을 만들고 그 안에 억새를 채운 뒤 주위엔 청하쑥부쟁이·고려담쟁이·남천·민들레 등을 심었다. 시민 정원사 김헌수(53)씨는 “금곡동의 화단은 꽃과 나무를 다시 심은 뒤 쓰레기가 80%가량 줄었다”며 “이런 게 소통의 힘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도심 속 버려진 땅에 꽃과 나무를 심어 생명을 불어넣는 ‘게릴라 가드닝(guerilla gardening)’이 확산되고 있다. 게릴라 가드닝은 1973년 뉴욕 화가 리즈 크리스티가 친구들과 함께 공터의 쓰레기를 치우고 꽃을 심는 활동에 나서면서 시작됐다. 2004년엔 리처드 레이놀즈라는 영국 청년이 집 주변의 버려진 땅을 남몰래 화단과 정원으로 꾸며 개인 블로그에 올린 게 화제가 되면서 더욱 주목을 받게 됐다. 성남시에선 주민과 시가 함께 움직였다. “쓰레기통으로 변한 화단을 살리자”거나 “방치된 조각 땅을 정원으로 만들자”는 주민들의 요청에 성남시가 시민 자원봉사 정원사들을 연결시켜줬다. 꽃과 나무 구입 비용 500만원도 지원했다.
새로 태어난 화단에는 지역 특성과 주민의 아이디어가 담겼다. 이매동 84-1번지 인도 옆 공터를 꾸민 ‘게릴라 가드너’는 초등학생들이다. 시가 위탁 교육 중인 ‘신나는 정원사’ 프로그램 소속 4~5학년 학생 13명이 부모님들과 함께 직접 정원을 설계했다. 오래된 잡초를 뽑아내고 알록달록 팬지꽃을 하트 모양으로 심은 뒤 하얀 조약돌을 둘렀다. 깨진 장독대를 뒤집어 조형물처럼 세워놓은 것도 이들의 아이디어다. 태평동 주민센터 건너편 주차장의 경계 화단에는 “돌 담벼락에 담배꽁초를 끼워넣지 못하게 하자”는 주민들의 바람이 반영됐다. 1.2m 높이의 화단벽 전체를 얇은 철사망으로 감싼 뒤 그 위에 고리가 달린 화분을 촘촘히 걸었다. 야탑역 광장에서 벤치로 쓰이던 박스 형태의 화단에도 향등골풀과 삼색조팝·털머위 등 21가지의 꽃과 식물이 심어졌다. 사회단체나 기업들도 노는 땅을 채워 소통의 공간으로 적극 활용 중이다. 성남시 노인보건센터는 콘크리트 옥상의 자투리 공간에 작은 텃밭을 조성해 노인 휴식 공간으로 활용 중이다. 삼성SDI는 용인시 기흥사무소 옆 공터에 오이·참외·수박 등을 심어 부서 간 장벽을 없애는 소통의 공간으로 가꾸고 있다. 성남시는 내년엔 게릴라 가드닝 예산을 2배 이상 늘리고 기업과 사회단체의 보다 적극적인 참여도 유도할 계획이다. 화단 관리는 지역 주민들에게 직접 맡길 예정이다. 애착심과 책임감을 갖고 꼼꼼히 돌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정연달 성남시 조경팀장은 “화단과 정원을 매개로 소통의 기회를 늘려가자는 취지에 주민들의 호응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윤호진 기자 기고자 : 윤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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